베를린에서

독일에서 임신 그리고 계류유산 (1)

call me uenbi 2024. 2. 19. 04:43

임신

여자의, 엄마의 촉이란 참 대단한 것 같다.

작년 11월 초 며칠 씩 계속되는 피곤함에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단어. 임신. 

설마 하는 마음으로 DM에서 부랴부랴 사온 임신테스트를 가지고, 아침까지 기다리기 마음이 급해 새벽에 테스트를 했다.

희미한 두줄을 보였다. 희미해도 너무 희미해서 이걸 믿어야 하나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임신 초반에는 호르몬이 약할수 있으니 며칠 뒤 한번 더 테스트해보라는 친구의 조언을 듣고, 이번엔 2세트가 들은 테스트 사고 며칠을 기다렸다. 두 번째는 선명해진 두줄.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아직 예비아빠인지 모르는 예비아빠 D는 카나리아 제도의 한 섬에서 리모트로 일하고 있는 중이었다. 며칠 뒤 돌아오는 그에게 어떻게 이 깜짝소식을 전할까 이틀을 고민했다. 나는 머리속이 혼란한데 영상 통화로 시덥지 않은 소리만 하길래 불쑥 이야기 해버렸다. 그가 돌아오는날 케익과 함께 서프라이즈를 하려는 내 로맨틱한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갑작스러운 임신 얘기는 제대로 서프라이즈였다. 우리 모두 계획에 없던 임신이라 얼떨결 했지만 이내 놀람은 설렘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루아침에 우리는 9개월 뒤 아기와 함께 보낼 출산휴가를 계획하고 있었다.

 

7주 차

눈으로 직접 보기까지 내가 임신이 정말 맞는지 확신이 안 섰다. 평소보다 많이 졸리긴 했었도 입덧이라던가 흔히 알려진 임신 초반의 증상이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7주 차, 부인과 의사 M 과 함께 초음파로 확인한 작은 콩알만 한 태아를 보는 순간 실감이 났다. 맞구나. 내 안에 새로운 생명이 씨앗을 맺었구나. 마지막 생리일을 묻는 간호사에, 평소 생리일이 정확하게 기록해두지 않는 나는, 대략 추측해서 적어 냈다. M 은 예상주차보다 조금 작지만 태아의 심장이 잘 뛰고 있다고 초음파 사진을 프린트해 주었다.

 

8,9,10주 차

준비 없이 임신이 된 나는 뒤늦게 임신부로 준비해야 하는 것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친구가 알려줘서 엽산을 먹기 시작했으니 임신에 대한 준비가 얼마나 안되었는지 짐작이 갈 것 이다. D 역시 열정적으로 임신과 출산에 관련한 글을 읽기 시작했다. 내 건강관리는 우리는 중요한 주제로 떠올랐다. 이제 마음대로 하리보 젤리도 먹지 못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임신 관련 릴스를 주고받았다. 이내 우리의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은 임신, 출산으로 맞춰졌다. 첫 검진때 받은 주차별 검사리스트에는 여러가지 검사가 적혀있었는데 11주 차에 있는 두번째 검진에서는 기형아 검사를 해야했다. 대충 검색해보니 한국이랑은 또 검사 순서와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었다. 콜롬비아에서 의학공부를 했던 친구 C와 같이 앉아서 어떤 종류의 검사가 필요한지, 비용은 적절한 건지, 보험에서는 어디까지 커버해주는지 꼼꼼히 살폈다. 그렇게 조금씩 독일에서는 임신과 출산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파악해 나갔다. C는 벌써부터 나에게 임산부가 튼살에 바르는 오일을 사주며 진심으로 축하해 줬다. 

 

2차 검진

아침부터 부산하게 일어나 의사에게 물어볼 질문리스트를 정리했다. D는 일하느라 바쁜와중에도 잘 다녀오라고 배웅해 줬다. 하필 트램이 늦게 와 테어민에 10분이나 늦었다. 도착하자마자 리셉션에 앉아있던 여자는 퉁명스럽게 다음부터 늦지 말라고 했다. 다음번에는 30분 더 일찍 나와야겠다고 다짐했다. 어쩌면 베를린에서 친절한 의사 M 이 나를 반겼다. 오늘 할 일이 많으니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가장 먼저 초음파로 태아를 먼저 체크한다고 한다. 이제는 11주 차이기 때문에 복부로 초음파 검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첫 복부 초음파 검사였다. 호기롭게 초음파기를 배에 대고 태아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음파에는 빈 아기집만 있었다. M 이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아직 아기가 작은 것 같다며 전 처럼 질을 통해 검사하기로 했다. M 은 당황한 표정을 애써 감추며 웃어보였지만 불안해 보였다. 굴욕의자에 앉아 다시 초음파 검사를 시작했다. M 은 태아를 이내 찾았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자로 태아 크기를 쟀다. M 은 더 이상 당황함을 숨기지 않았다. 나에게 아기에게 문제가 생긴것 같다고 했다. 난 아무것도 한게 없는데 뭐가 어떻게 잘 못될수 있는가? 초음파상에 아기의 움직임이 없고 11주차 치고 너무 작다는 것이다. 성장을 멈춤 것이라고 얘기했다. 나는 아기가 살아있기는 하냐고 물어봤다. 조심스럽게 M 은 아기가 더 이상 살아있지 않다고 했다. 진료실에 들어온 지 불과 10분도 안되어서 나는 계류유산 판정을 받고 소파술을 진행하는 병원의 연락처를 전달받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