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Thread, 디지털 아고라

call me uenbi 2025. 6. 3. 00:39

마지막 글을 쓴 지 1년 남짓 되어 간다. 야심 차게 시작했던 요르단 여행기는 연재를 중단하고 Tagesbuch는 일기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 1회성에 그쳤고 그렇게 블로그는 방치되었다. 호기심에 잠깐 들어와 보니 그래도 그 와중에도 꾸준히 이름 모를 방문자들이 있었다.

 

최근 텍스트 위주의 소셜 미디어 Thread 에 빠져 틈마다 콘텐츠를 소비했다. 한국어로 하는 수다가 꽤 그리웠는 모양이다. 조금씩 나를 드러내며 짧은 글들을 썼지만 어딘가 불편했다. 불특정 다수에게 사생활이 담긴 에피소드나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공유하고, 인스타그램도 연결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hread에는 다들 본인을 PR 하기 바쁘다. 본인이 얼마나 대단한 여정을 밟아왔는지 그래서 어떤 위치에 올랐고 본인만의 과거, 현재이야기를 세상에 펼치고 싶단다. 그곳에는 행복한 사람도, 불행한 사람도 신경질적인 사람도 있다. 다 제각기 삶을 공유하면서 모두의 관심을 얻고 싶어 하는 자들의 2025년판 디지털 아고라 느낌이다. 

 

어제는 베를린과 서울 물가에 대한 짧은 글을 올렸는데 누군가가 날선 댓글을 단다. 나는 그냥 서울과 베를린의 맥주 가격, 과일 가격 차이 등 시시콜콜한 물가 얘기하고 싶었는데 본인은 임금대비 물가를 알고 싶었나 보다. 그러다 갑자기 의료 시스템을 들먹이며 열심히 대댓글을 단다. 그녀는 아무래도 한국지옥 독일만세(?)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 같았다. 하지만 6년 남짓 이곳에 살면서 나는 슬슬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한 환상이 벗겨지고 있었고 이왕 시스템을 얘기하는 것이면 이곳도 무릉도원은 아니다-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어떤 대상에 대한 절대적인 동경과 멸시는 상당히 위험하기 때문에. 초등학교 3학년 권장도서를 추천하면서 마무리하는 유치한 그녀의 댓글에 나는 더 이상 답변하지 않고 휴전의 의미의 하트만 눌렀다.

 

아니, 나 여기서 잘 살고 있는데 왜 여기까지와서 낯선 한국인과 온라인으로 피 튀기는 논쟁 아니 기싸움한단 말인가. 심지어 파트너와 함께 주말동안 시부모님 댁에서 쉬면서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을 먹고 난 뒤에 말이다.  계정을 비활성화하고 앱을 삭제했다. 마음이 평온해졌다. 하지만 그녀의 광기 찬 한국을 향한 분노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나 또한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한국은 이래서, 저래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독일에서 다양한 군상의 사람들을 만나고, 독일 사회에 점점 진입할수록 날것의 모습들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그와 반대로 한 달 전 다시 한번 방문한 한국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살만했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제도적으로 발전하는 모습도 피부로 느끼고 미약하지만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우리 사회, 그 구성원들에게 박수 쳐주고 싶을 정도였다. 이제는 한국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조심스럽다. 내가 경험한 한국 사회는 시간이 흐를수록 대과거가 돼 가고 있고, 나는 대한민국에 세금도 내지 않고 투표권만 행사하는 해외 거주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 친적들 그리고 친구들이 얼마나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지 잘 알기에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에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해외 거주자 사이에서는 어느 곳이 살기 더 좋냐는 끊임없는 대화 주제이다. 한국인이든, 유럽인이든, 난민이든, 일단 본인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은 그들이 사는 곳과 고향이라는 비교 대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완벽한 답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저 본인이 정착한 곳에서 하루하루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다면 살기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그 어느 사회도, 어느 정책도, 어느 사상도 완벽하지 않고 그렇게 때문에 모두가 꾸준히 그것에 관해 얘기하고 토론하고 개선해 나갸야 하는 것이다.

 

마침 내일이 대선이라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긴 채 오랜만에 글을 써보았다. 글을 통해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과 나를 숨기고 싶은 욕망이 혼재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