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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임신 그리고 계류유산 (3)베를린에서 2024. 3. 18. 07:19
소파술 그 후
작년 12월 18일, 임신 사실을 안지 채 두 달이 되기도 전에 유산 판정을 받았다. 12월 23일 내 인생의 첫 수술, 소파술을 받았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 여겼던 나의 작고 소중한 아기와는 이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뱃속에서 더 자라기도 전에 작별을 고해야만 했다. 나는 소파술이라는 말이 어쩐지 입에 붙지 않는다. 자궁의 잔여물을 제거하는 수술인데 태아가 더 이상 태아가 아니라 자궁의 잔여물이 되었다는 사실이 마음을 더 아리게 했다. 수술 후 깊은 슬픔에 잠긴 채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이했다. 유산 판정 후 약 3주, 소파술 후 2주가 지났을 무렵, 산부인과 주치의 M과 검진이 있었다. 새해가 되고 나의 슬픔은 조금씩 씻겨 내려가고 있을 즈음이었다. 지난번 M 앞에서 펑펑 눈물을 흘렸던 것이 생각나 이번에는 최대한 밝게 인사했다, 이제 좀 나아졌다고. 다행이라고 인사를 건네는 M은 나에게 또 다른 달갑지 않은 소식을 전했다.
임신 사실을 확인 하자마자 했던 첫 바이러스 검사에서 결과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추가 검진이 권장되며, 이 분야 전문 선생님이 있는 센터에서 검사해야 한다고 한다. 지난번에는 갑작스러운 유산 때문에 워낙 경황이 없어, 무엇보다 나의 정신적 충격이 말이 아니었기에, 지금에서야 진단서를 전해준다고 M이 말했다. 그 당시에는 뭐가 뭔지 나는 또 영문을 모른 채 앉아있었다, 자궁경부암 백신을 맞은 적이 있냐고 물어보는 M 말에 기억이 나지 않아 대답을 못했다. 이후 또 다른 검진, 검진 결과를 통보 받기까지 약 한 달이 흘렀고 원추절제술을 권장받았다. 당장 암은 아니지만 암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다분히 있으며 가까운 시일 내에 수술을 해야 한다고. 유산 다음으로 충격적인 소식이 이었다. 지금껏 나름 정기검진을 꾸준히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만성 염증이 있은 것 외에는 딱히 불편한 점도 없었는데 말이다. 설마 이 바이러스가 내 유산에 영향을 주었던 건가? 우편으로 받은 진단서 한 장으로 인해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그제야 작년 정기검진을 2번이나 건너뛰었던 것이 생각났다. 작년 봄에 잡았던 정기검진은 두 차례 휴가로 11월로 미뤘었고, 마침 정기검진이 있을 무렵 임신이 되어 겸사겸사 정기검진을 가게 된 것이다. 4월 예정이었던 정기검진을 11월 말이 되서야 한 것 이었다.
만약
그때 내가 임신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또 검진을 미뤘을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아찔하다. 현재 나의 상황은 몇 달 안에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암으로 충분히 발전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내 첫 태아는 안일했던 나에게 경각심을 깨워주고 떠난 것일까?
한 달 전 자궁경부이성형증 3단계 진단을 받고, 지난주 원주절체술을 받았다. 사실 이 포스트는 유산을 주제로 시작했기에 더 이상의 이야기를 전개할지는 미지수이다. 왜냐면 아직 모든 것이 현재 진행 중이기 때문. 수술 직전 시작 했던 백신 접종을 마무리하면서, 수술 후 추적 검사 통해 추후를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건강을 다시 되 찾았을 때 임신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다음번에는 몸도 마음도 건강한 임산부로 다시 임신 소식을 알릴 수 있길 바라며 나의 계류유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낸다.
출처: https://thevoyageoflife.tistory.com/entry/계류-유산 [매일을 여행처럼.: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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