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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에서 임신 그리고 계류유산 (2)
    베를린에서 2024. 2. 19. 04:44

    유산판정

    M은 나를 위로하면서도 빠르게 다음 단계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자연스럽게 태아가 배출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 두 번째는 약물로 태아 배출을 유도하는 것, 세 번째는 태아를 직접 제거하는 소파술이었다. 그녀는 딱히 특정 방법을 권유하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살아있지 않은 태아가 자궁에 오래 머물면 감염 위험이 있다고 했다. 약물을 사용해도 잔여물이 남아있을 경우 결국 소파술을 해야 할 수 도 있다고 했다. 그녀는 친절하게 설명했지만 어떤 설명도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에 멍하다가, 서서히 현실이 받아들이고 나니 감정이 북 바쳐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눈물이 주렁주렁 열매를 맺고 곧 쏟아졌다. M 은 나에게 티슈를 건네며 힘들게 임신한 것이냐고 물어본다. 그건 아니지만.. 나는 말도 잇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M 은 계획 없이 임신이 되었다는 사실은 나와 파트너, 둘 다 건강하고 언제든 임신이 될 수 있는 환경이라는 반증이니 다음을 기약하자고 했다. 10주 차 안에 발생하는 유산은 대게 염색체 형성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며, 산모의 건강과는 별개라고 이야기했다. 내 잘 못이 아니라고. 돌이켜보니 그것은 M 이 의사로서 건넬 수 있는 가장 큰 위로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슬픔이 쓰나미처럼 밀려와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당장 큰 결정하기 힘들 수 있으니, 일단 진단서를 받아가고, 그래도 내일까지는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돌아오는 주말이 독일 최대의 명절 크리스마스였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의료파업으로 한참 말이 많은 시기에 크리스마스까지 겹치니, 소파술을 하려면 늦어도 내일 병원에 전화를 해서 테어민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계류유산

    어이없이 유산을 판정받고 집까지 오는 길 내내 울었다. 얼마 만에 이렇게 서럽게 울어보는지 모르겠다. 슬프다는 감정을 느끼기 전에 그냥 눈물이 주룩주룩 내렸다. 조금 진정되고 집에 돌아오니 D는 여전히 열심히 줌 미팅을 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또 어떻게 전해야 하나 멍하니 앉아서 생각했다. 미팅이 끝나고 내가 돌아온 기척을 느꼈는지 나에게 와서 어땠냐고 물어봤다. 그때까지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어서 내가 예정보다 훨씬 일찍 돌아왔는데도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 말을 때려는 순간, 가차 없이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고 그제야 무엇이 잘못됐음 느끼고 나를 안아줬다. 한바탕 울고 나니 말로만 듣던 눈물샘이 마르기에 도달했고 그제야 훌쩍거리며 설명했다. 우리는 짧게 무엇이 최선인지 논의했고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D는 곧바로 수술센터에 전화를 했고, 대강 상황을 설명하고 수술 테어민을 잡았다. 같은 주 목요일, 4일 뒤였다. 내가 지난 4년 간 독일에서 경험한 가장 빠르게 진행된 일정이었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아기 침대 놓을 자리를 상의하던 우리는 조용히 소파에 앉아 유산에 관련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산에도 여러 케이스가 있고 나의 케이스는 태아가 아직 자궁에 머물고 있는 '계류유산'임을 알게 되었다. 처음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D는 최대한 늦게 주변에 알리자고 했다. 첫 3개월을 보내고 안정기에 들어선 뒤 얘기하자고. 하지만 얼떨결에 임신이 된 나로서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고, 아직 프로베 자이트인 직장에서 말 못 하고 끙끙 앓다가 답답함을 못 이기고 가까운 친구들과 가족에게 알렸다. 그제야 조심스러웠던 D도 조금씩 주변에 알리기 시작했다. 주말에 부모님 집에 초음파 사진까지 들고 가서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게 없던 일이 되었다. 그렇다고 이 사실을 다시 주변에게 일일이 전달할 필요는 없었다. 결코 좋은 소식은 아니니깐. 하지만 전날까지 검사를 잘 하라며 연락을 주던 D의 부모님에게는 알려야 했다. 나의 한국 가족에도 마찬가지. D는 기운이 없는 나 대신 부모님에게 조심스럽게 유산과 나의 상태에 대해 알렸고, 이튿날 수술 전 관련 정보를 전달받는 테어민을 다녀온 뒤 나 또한 부모님과 동생에게 얘기했다.

     

    경험한 자

    유산을 겪으면서 어쩔수 없이 이 달갑지 않은 소식을 전해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그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두 개 유형으로 나누어졌다. 1. 충격형 2. 덤덤형. 충격형은 유산은커녕 임신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남녀, 나처럼 유산이라는 변수를 고려해 본 적 없는 첫 임산부, 순조로운 임산과 출산만을 경험한 여성들을 이었다. 예를 들어 D의 엄마는 순조로운 출산만을 경험했고 내 소식을 들었을 때 나만큼이나 깊게 슬퍼하였다. 그녀는 영상통화로 내 잘못이 아니라며 위로를 건네는데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반대로 덤덤형은 유산을 한번 이상 경험한 엄마들, 가까운 지인이 유산을 경험하고 그 옆에서 위로했던 경험이 있던 사람들이다. 내가 처음 유산 소식을 알렸을 때 나의 엄마는 그제야 덤덤하게 당신의 경험을 공유했다. 동생과 나를 임신하기 전후 몇 번이나 유산의 경험이 있었다고. 사실 우리가 10대일때 엄마가 한번 유산을 했던 적이 있었고 나는 그 당시를 똑똑하게 기억했다. 그때의 우리는 너무 어려서 엄마의 늦둥이 임신도 충격, 유산도 충격이었고, 슬퍼하는 엄마에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어쩔 줄 몰라했다. 그리고 이제야 물어볼 수 있었다. 그때 많이 힘들었냐고. 그 당시 엄마의 유산은 6개월 차였을 때였고, 10주 차의 나의 유산과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훨씬 더 힘든 상황이었음을, 15년이 더 지난 지금에서야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엄마가 가장 힘들 때 제대로 위로해주지 못했단 사실에 슬픔보다 미안함으로 또다시 눈물을 쏟았다. 그래도 경험자인 엄마가 괜찮다고 위로해 주니 조금이나마 안정을 되찾았다. 이 슬픔도 곧 지나가리라. 충격형이었던 친구들도 나로 하여금 유산을 간접 경험을 하였고, 다음번에는 덤덤하게 누군가를 잘 위로해 줄 수 있겠지. 내 또래보다 나이가 있는 D는 역시 주변 친구들을 통해 간접 경험이 있는 상태였고, 심적으로 약해진 나를 위로해 주고 케어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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