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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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ead, 디지털 아고라베를린에서 2025. 6. 3. 00:39
마지막 글을 쓴 지 1년 남짓 되어 간다. 야심 차게 시작했던 요르단 여행기는 연재를 중단하고 Tagesbuch는 일기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 1회성에 그쳤고 그렇게 블로그는 방치되었다. 호기심에 잠깐 들어와 보니 그래도 그 와중에도 꾸준히 이름 모를 방문자들이 있었다. 최근 텍스트 위주의 소셜 미디어 Thread 에 빠져 틈마다 콘텐츠를 소비했다. 한국어로 하는 수다가 꽤 그리웠는 모양이다. 조금씩 나를 드러내며 짧은 글들을 썼지만 어딘가 불편했다. 불특정 다수에게 사생활이 담긴 에피소드나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공유하고, 인스타그램도 연결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hread에는 다들 본인을 PR 하기 바쁘다. 본인이 얼마나 대단한 여정을 밟아왔는지 그래서 어떤 위치에 올랐고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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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ebuch 26.08.2024베를린에서 2024. 8. 28. 04:57
Was ist der Unterschied zwischen einem ‘Expat’ und einem ‘Auswanderer’? Wozu gehöre ich?Einmal hat mich jemand gefragt, warum ich nach Berlin umgezogen bin, obwohl Korea nicht arm ist.Das Leben dreht sich nicht nur um das 'Überleben', sondern da ist noch mehr. Damals habe ich gedacht: So eine dumme Frage. Jedoch habe ich, seitdem ich in Europa lebe, öfter Menschen gesehen, die keine berufliche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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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임신 그리고 계류유산 (3)베를린에서 2024. 3. 18. 07:19
소파술 그 후 작년 12월 18일, 임신 사실을 안지 채 두 달이 되기도 전에 유산 판정을 받았다. 12월 23일 내 인생의 첫 수술, 소파술을 받았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 여겼던 나의 작고 소중한 아기와는 이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뱃속에서 더 자라기도 전에 작별을 고해야만 했다. 나는 소파술이라는 말이 어쩐지 입에 붙지 않는다. 자궁의 잔여물을 제거하는 수술인데 태아가 더 이상 태아가 아니라 자궁의 잔여물이 되었다는 사실이 마음을 더 아리게 했다. 수술 후 깊은 슬픔에 잠긴 채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이했다. 유산 판정 후 약 3주, 소파술 후 2주가 지났을 무렵, 산부인과 주치의 M과 검진이 있었다. 새해가 되고 나의 슬픔은 조금씩 씻겨 내려가고 있을 즈음이었다. 지난번 M 앞에서 펑펑 눈물을 흘렸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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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임신 그리고 계류유산 (2)베를린에서 2024. 2. 19. 04:44
유산판정 M은 나를 위로하면서도 빠르게 다음 단계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자연스럽게 태아가 배출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 두 번째는 약물로 태아 배출을 유도하는 것, 세 번째는 태아를 직접 제거하는 소파술이었다. 그녀는 딱히 특정 방법을 권유하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살아있지 않은 태아가 자궁에 오래 머물면 감염 위험이 있다고 했다. 약물을 사용해도 잔여물이 남아있을 경우 결국 소파술을 해야 할 수 도 있다고 했다. 그녀는 친절하게 설명했지만 어떤 설명도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에 멍하다가, 서서히 현실이 받아들이고 나니 감정이 북 바쳐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눈물이 주렁주렁 열매를 맺고 곧 쏟아졌다. M 은 나에게 티슈를 건네며 힘들게 임신한 것이냐고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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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임신 그리고 계류유산 (1)베를린에서 2024. 2. 19. 04:43
임신 여자의, 엄마의 촉이란 참 대단한 것 같다. 작년 11월 초 며칠 씩 계속되는 피곤함에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단어. 임신. 설마 하는 마음으로 DM에서 부랴부랴 사온 임신테스트를 가지고, 아침까지 기다리기 마음이 급해 새벽에 테스트를 했다. 희미한 두줄을 보였다. 희미해도 너무 희미해서 이걸 믿어야 하나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임신 초반에는 호르몬이 약할수 있으니 며칠 뒤 한번 더 테스트해보라는 친구의 조언을 듣고, 이번엔 2세트가 들은 테스트 사고 며칠을 기다렸다. 두 번째는 선명해진 두줄.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아직 예비아빠인지 모르는 예비아빠 D는 카나리아 제도의 한 섬에서 리모트로 일하고 있는 중이었다. 며칠 뒤 돌아오는 그에게 어떻게 이 깜짝소식을 전할까 이틀을 고민했다. 나는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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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표 그리고 새로운 시작베를린에서 2023. 9. 5. 01:18
8월 마지막 주,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가늠이 가지 않을 정도 변화와 이동이 많았다. 7월, 8월 휴가 겸 포투루갈 여행을 다녀오고 하반기를 위해 재정비를 준비하는 중, 뜻밖의 기회들이 우수수 찾아왔다. 마치 그동안의 시간들을 한 번에 보상해주려는 것 처럼. 그리고 다가오는 10월, 그 1막을 마무리하고, 2막을 시작한다. 그래서 지난 1막을 되돌아보려고 한다. 1. 공교롭게도 지난 29일은 베를린에 이사 온 지 정확히 4년이 되는 날이다. 4년 전의 나는 놀라울 정도로 순진하고 대담했다. 19살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하여 치열한 미대 입시를 거쳐 공부를 마치고, 24살의 나이로 이른 사회생활 시작하며 나름대로 사회인으로서 경험이 있다고 자부심 있었다. 하지만 이것들 또한 온실 속의 화초 같은 경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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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베를린에서 2023. 7. 25. 17:26
어제 한국에 있는 동생과 통화하다가 컨텐츠를 올려보는 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다. 문득 7년 전 호기롭게 시작했었던 티스토리가 생각나 다시 로그인을 해보았다. 몇 안되는 글에도 꾸준히 방문자가 있다는 놀라움과 누군가는 2023년에 2017년에 작성된 내 포스트를 읽었다는 멋쩍음. 그리고 기록의 힘을 새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제 기억보다는 기록을 해보려고 한다. 근황을 한줄로 요약하자면 나는 2019년 베를린에 와서 지금까지 쭉 살고 있다. 그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순간 순간이 생존과 배움의 시간이었다. 어느덧 해외 생활 4년차에 접어들면서 나름 안정이 생길줄 알았으나 ㅎㅎ 여전히 매일이 도전의 시간과 같다. 물론 안정적인 삶을 원했다면 한국을 떠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주변환경이 바뀌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