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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침표 그리고 새로운 시작
    베를린에서 2023. 9. 5. 01:18

    8월 마지막 주,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가늠이 가지 않을 정도 변화와 이동이 많았다. 7월, 8월 휴가 겸 포투루갈 여행을 다녀오고 하반기를 위해 재정비를 준비하는 중, 뜻밖의 기회들이 우수수 찾아왔다. 마치 그동안의 시간들을 한 번에 보상해주려는 것 처럼. 그리고 다가오는 10월, 그 1막을 마무리하고, 2막을 시작한다. 그래서 지난 1막을 되돌아보려고 한다. 
     
    1.
    공교롭게도 지난 29일은 베를린에 이사 온 지 정확히 4년이 되는 날이다. 4년 전의 나는 놀라울 정도로 순진하고 대담했다. 19살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하여 치열한 미대 입시를 거쳐 공부를 마치고, 24살의 나이로 이른 사회생활 시작하며 나름대로 사회인으로서 경험이 있다고 자부심 있었다. 하지만 이것들 또한 온실 속의 화초 같은 경험이었다는 것을 해외 살이하면서 톡톡히 알게되었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보는 일이 비일지배하고, 내가 친절하게 한다고 상대방이 친절한 것도 아니며, 한국에서는 당연시했던 행동들로 뜻하지 않은 오해를 사기도 했으며, 어제오늘 같이 지낸 이들이 내일의 앙숙이 되기도 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적당한 방어를 하되, 공감과 친절함으로 언제든 누군가와 소통할 의지가 있다는 뉘앙스를 내보내야 최소 "지인"이라 부를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꽤 오랜시간의 경험을 통해 몸과 머리로 깨달았다.
     
    2.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시작은 꽤 순조로웠다. 베를린으로 이사온지 2개월 만에 디자이너 인턴으로 업계에 입문하였고, 팬더믹 직전 적지만 정기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하였고, 1인 사업자를 내어 그동안 생각해왔던 그림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겼다. 겉으로 보기엔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다른 한편으로 현실은 자괴감의 연속이었다. 30대 초반, 한국에서의 경력을 내려두고 처음부터 외국인의 신분으로 홀로서기를 하기란 쉽지 않았다. 특히 주변 취업한 한국, 외국 친구들의 시간과 금전적인 여유, 무엇보다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 안정감이 부러웠다. 반면 나와 비슷한 처지의 아티스트들과 고민을 주고받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 한켠이 편안해졌다 - 아 나만 힘든게 아니구나. 다들 저렇게 버텨왔구나. - 라는 자기위로와 함께 자기 연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즈음 남자친구와 정말 자주 다투었다. 남자친구가 나를 측은하게 여겨주기를 바랬고 부정적인 기운을 그에게 까지 전파했다. 나를 채찍질해야지만 상황이 나아질 것 같았다. 그러던 중 1년 가까이 취업준비를 하다가 실업 급여가 끊긴 직후에 취업한 친구 E 를 오랜만에 만났다. E 는 취업 준비하랴 바빴고 나 또한 우울감 사로잡혀 서로의 고민을 들어줄 여유 없었고, 해가 바뀌고 봄이 되서야 간신히 만나 대화를 하던 도중 E 도 나와 비슷한 시기를 보냈음을 알게되었다. 재취업이라는 목표에 하루하루를 불안과 조급함에 시달리다 한달간의 휴식기를 가지면서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일에서 헤어나왔다고 한다. E는 남자친구와 발리로 여행을 갔고 이 기간 한번도 노트북을 펼쳐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 뒤 심리적 안정감을 찾은 뒤 비로소 한 스타트업에 합격하게 되었다고. 놀랍도록 서로를 공감해주던 E 와 나는 스스로의 기대치가 만족될때까지 현재를 희생하는 그런 습관이 있었다. 이것만 넘기고, 이것만 합격하면, 이러한 조건을 입에 달고 살았고, 우리의 계획 속에 현재는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그 모든것을 일궈내야하는 이는 현재의 우리임에도 불고하고 말이다. 어찌저찌 이 미래만 바라보는 굴레를 극복한 E는 지금 걱정하나 내일 걱정하나 현실은 같으니 쉴때는 마음껏 쉬라고, 결국 이 모든 것을 이겨내는 힘은 꾸준함과 긍정적인 마인드라고 힘을 실어주었다. 
     
    3.
    그때 부터 조금씩 생각을 바꿔나갔던 것 같다. 물론 남자친구의 역할도 컸다. 우울해 하던 나를 위해 같이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고, 오랫동안 얘기만 해왔던 캠핑 계획도 밀어부쳤다. 그 와중에 나는 잔잔히 하지만 꾸준하게 작업하고, 더 나은 수입을 위한 구직 활동도 계속했다. 하지만 이전처럼 밑도 끝도 없이 몇 시간동안 링크드인을 뒤젹거리는 일은 없었다. 1일 1회 이력서 제출을 목표로 하고 그날의 목표를 달성하면 노트북을 닫고 휴가 계획을 세웠다. 구직은 구직이고 휴가는 휴가니깐. 그렇게 8월 훌렁 포르투갈로 2주간의 여행을 떠났다. 여행하는 기간동안 링크드인은 바라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여행 막판에 우연히 마음에 드는 공고를 보고 그냥 지원해버렸다. 휴가가 끝나고 베를린에 돌아온 뒤, 지원했던 회사에서 연락을 받았고 어리둥절한채 2번의 면접을 보았다. 1번째 전화 면접과 2번째 대표와의 면접을 통해 그동안의 베를린에서의 진행했던 프로젝트와 1인 창업의 경험을 인정 받았고, 그들이 요구하는 독일어 레벨 C1 미치지는 않지만 최종 계약을 하게 되었다. 관련 전공을 공부했지만 이 쪽 업계에서 정식으로 취업하는 것은 졸업하고 처음이다. 한국에서 취업했을때 보다 약 20배는 기뻤다. 계약은 주 4일로 여가시간에 내 작업을 꾸준히 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그렇게 팬더믹 부터 약 3년 반을 일해왔던 카페도 그만 두게 되었다. 내 인생의 첫 퀸디궁(Kundigung)이었다.

    지난 여름 포루투갈 여행 중. Coimbra 에서 발견한 메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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